18 9월 작업노트/개인전<풍수백화점>
<풍수백화점> 작가노트
■ 노현탁
2022년 대선 TV토론 당시, 한 후보의 손바닥에 적혀 있던 글자 하나—‘王(왕)’. 그 짧은 부적 하나가 드러낸 것은 ‘믿음’의 구조였다.공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정치 무대에서조차 우리는 즉석 안심의 기호를 소비한다 그 장면이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었다. 조금은 당혹스럽고 그러나 지독히 익숙한 현실로부터.
전시 제목 《풍수백화점》은 실제 존재하는 온라인 상호에서 가져왔다. 풍수는 지금 그림이자 상품이며 믿음은 벽에 걸리고 쇼핑몰에 등록된다. 이 전시는 풍수를 비롯해 위기와 불안 속에서 작동하는 신념 체계들이 어떻게 기호로 변형되고 유통되며, 반복 소비되는지를 주시한다.
풍수는 본래 인간과 환경의 조화를 추구하던 동양 철학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것은 불안을 달래는 장식이자 ‘믿음의 포장지’로 작동하는 기호가 되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무속인이 구조 현장에 호출되던 장면처럼. 위기의 순간, 사람들은 해답이 아니라 신화적 이미지를 찾는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어느새 ‘믿음의 알약’처럼 포장되어 유통된다. 달마도, 잉어, 두꺼비는 벽에 걸리는 동시에 마케팅 오브제가 되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자기계발 산업 속에서 신념의 상품 언어로 기능한다. 믿음은 이제 감정의 안정제이며 거래 가능한 기호다.
《풍수백화점》은 이런 시각적 신념들이 이미지, 불안, 소비의 구조 사이를 진동하는 방식을 회화 내부에서 조형의 간섭 구조로 재구성한다.
이를 위해 나는 전시장 주변의 카페, 약국, 미용실,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실제로 진열된 풍수 소품을 관찰하고 교환하거나 구매하려는 시도를 했다. 기존 오브제와 나의 작업 의도를 설명하며 내가 준비한 오브제나 금액으로 교환하려 했지만 모두 정중히 거절당했다.
처음엔 단순한 협조 요청으로 시작 했는데 이런 접근 방식 자체가 다소 무례할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그 오브제들이 먼지가 쌓이고 액자가 떨어진 채 방치되어 있음에도 내가 관심을 보이자 사람들은 그것을 손대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듯했다.
무심하게 걸려 있던 대상이 누군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돌연 ‘건드릴 수 없는 것’으로 전환되는 감정의 전이를 목격한 셈이다.
이 경험은 작업의 방향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믿음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기호나 장식이 아니라 말로 설명되지 않는 심리적 거리나 감각의 잔존물과 얽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믿음은 그것이 작동하는 맥락을 벗어났을 때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시 직접 확보한 오브제는 없었지만, 현장에서 촬영한 이미지 기록들은 이후 작업으로 변주되었다. 실패한 시도의 잔재였지만 오히려 그만큼 믿음이 작동하는 현실의 결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나는 거래 자체보다는 그러한 반응과 분위기에서 감지된 감정의 마찰, 그리고 믿음에 대한 무의식적 애착과 방어의 층위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풍수백화점’이라는 실제 상호명을 제목으로 삼고 신앙 오브제를 하얀 좌대 위에 배치해 전시와 소비, 신성과 상품성의 경계를 비평적으로 교차시켰다.
유통 구조에 대한 조사는 이후 온라인 플랫폼으로 전환되었다. ‘풍수백화점’을 비롯한 여러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같은 범주의 소품들을 구매하며 믿음이 어떤 ‘시장적 경로’를 따라 도착하는지를 추적했다. 어릴 적 기억, 사회 재난과 관련된 뉴스 이미지, SNS에 떠도는 부적과 상징물 속에서 감각의 잔재와 정서의 틈도 함께 수집했다. 믿음은 단지 정보나 상징이 아니라 감각의 표면과 기억의 틈 사이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수집과 조합의 방식은 회화적 연구로 기능하며 믿음이 어떻게 현실과 상상, 감각과 정보 사이에서 기호화되는지를 드러낸다.
특히 달마도, 잉어, 두꺼비 등 신앙의 상징물은 기존 형상 위에 자본/기호/캐릭터를 병치함으로써 기호와 현실 형상이 간섭하는 감각 구조를 회화 혹은 조형물 내부에서 구성한다.
이 간섭은 관객의 감각에 신앙적 이미지로 진입하게 만들었다가 해석이 어긋나는 순간을 유도하며 감각 자체의 구조가 어떻게 사회적 믿음과 결합되어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 과정을 가능케 하는 핵심 기법은 내가 고안한 Meta-Automatism(메타 오토마티즘)이다. 계획된 설계를 바탕으로 외부 자극(EMS)을 병치시켜 의도와 비의도, 통제와 떨림이 동시에 발생하도록 유도한다. 붓질의 물성과 신체 반응의 불규칙성이 중첩되며, 회화는 하나의 ‘감정적 진동 장치’처럼 작동하게 된다. 그 결과물은 단순 재현을 넘어서 믿음의 감각적 잔향을 진동하고 잔류한다. 이 개념은 본 전시의 핵심 작업 중 하나인 〈흔들리는 신체〉 시리즈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된다. 과거 성인 도상이 신성한 믿음을 시각적으로 체현했던 것처럼 오늘날 SNS 상에서는 과장된 포즈와 연출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숭배, 욕망, 사회적 환상이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나는 웹에서 수집한 과장된 모델 포즈를 기호적 간섭 실험의 도구로 전환하여 작업에 사용했다. 이 사진들은 단순한 회화적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의 기준점이자 사회적 욕망이 투사된 신체 기호의 구조를 분석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수집된 이미지는 메타 오토마티즘 기법을 통해 외부 자극(EMS)이 개입된 물리적 떨림과 중첩되며 의도된 형상과 실제 붓질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이러한 과정은 오늘날 신체가 어떻게 시각적 숭배의 대상으로 기능하고 동시에 감각적 간섭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회화 내부에서 시각화하는 시도다.
이 전시는 믿음이 어떻게 기호로 전환되어 시장에 진입하고 그 기호가 감각에 간섭함으로써 기억과 이미지에 대한 우리의 인식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탐구한다.
《풍수백화점》은 이어질 3부작의 첫 장이기도 하다. 2026년 《기억 구멍》에서는 망각을 유도하는 감정의 알고리즘을, 2027년 《마법의 주문》에서는 믿음이 신화화되는 정치적 공동체의 구조를 다룰 예정이다.